베네수엘라, 24조원 규모 돈세탁…
국제투명성기구 “국제제재 회피수단, 암호화폐 이용”

국제투명성기구 베네수엘라 지부는 ‘암호화폐, 베네수엘라가 세계에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자금 세탁과 부패’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암호화폐 생태계를 부패, 정치적 통제, 국제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추진해 왔다”고 4일(현지시각) 밝혔다.
33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1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부에서 주도해 발행한 가상화폐인 ‘페트로'(Petro)를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PDVSA)의 석유 판매 및 유통 위장 수단으로 이용했다. 또한 ‘암호화폐자산감독청'(Sunacrip) 같은 별도의 부처까지 둘 정도로 의욕적으로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페트로 출시 당시 국제사회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페트로의 미국 내 거래와 사용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마두로 최측근이었던 타레크 엘 아이사미 전 석유부 장관 등의 횡령 수단으로 쓰이는 등 논란 속에 현재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국제투명성기구 베네수엘라 지부는 페트로에 대해 “경제 현대화를 위한 주권형 암호화폐로 소개됐지만, 페트로는 결코 탈중앙화되거나 투명한 암호화폐가 아니었다”면서 “행정부가 통제하는 토큰으로, 불투명한 거래와 공금 빼돌리기 등에 악용됐다”고 설명했다.
‘페트로 붕괴’ 이후 2024년께부터 베네수엘라 정부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 및 테더(USDT)로 눈을 돌렸다고 지부 측은 부연했다. 민간 기업에 공식 라이선스를 부여한 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자금 출처 통제 없이 대규모 매매를 수행함으로써 환율 차익을 노린 거래와 잠재적 자금 세탁을 용이하게 한다고 지부 측은 강조했다.
국제투명성기구 베네수엘라 지부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세탁 규모를 169억5천만 달러(24조5천억원 상당)로 추산했다. 서방의 경제 봉쇄를 우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석유 대금을 암호화폐로 징수했는데, 이 대금이 돈세탁 과정을 거쳐 증발했다는 뜻이다.
지부는 보고서에서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부패는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용인한 일종의 경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정부는 환율 시장 유지와 외화 부족분 보충을 위해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장려했고, 관련 민간 금융기관은 투명성 없이 중개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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